1. 게르만 바이킹 켈트족의 미술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이 찬란한 기독교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동안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5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연이어 로마에 침략한 게르만 민족은 서로마 제국을 점령해 독립된 지방 왕국을 형성하고 장장 200년에 이르는 혼란과 암흑시대를 열고 있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전쟁, 봉기와 살인, 약탈, 방화로 점철된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암흑 상태에서 탈출할 수가 없었다. 고대 세계가 몰락한 후 유럽 제국들이 대략적인 형태를 갖춰 생기기 전인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시대에 관해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기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적 업적을 귀하게 여겨온 사람들은 고트족, 반달족, 켈트족, 바이킹족, 게르만족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지만 이들은 정교한 금속세공이나 탁월한 목공예 같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미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용들이 몸을 꼬고 있거나 새들이 신비스럽게 얽혀 있는 것 같은 복잡한 문양을 좋아하였다. 특히 게르만 민족들은 스키타이인들에게 전수받은 동물 문양을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발전시켰다. 대표적으로 노섬브리아에서 만들어진 <린디스판 복음서>는 환상적으로 뒤엉켜있는 용과 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복잡하고 풍부한 레이스 문양으로 된 십자가가 특징이다. 그 바탕을 십자가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움츠러든 뱀들의 율동적인 형상은 끊임없는 변화를 주고 가운데에 있는 와인 글라스들이 연결된 것 같은 켈트족의 십자가와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각기 다른 문양이 서로에게 엄격하게 대응하며 디자인과 색채의 복잡한 조화로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고유의 토착 전통을 몸에 익힌 켈트족 미술가들의 솜씨와 예술적 감각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2. 카롤링거 왕조의 미술
게르만 민족이 대이동을 하고 정학하는 혼란한 시기에 샤를마뉴가 세운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일부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통일된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고 로마의 옛 영광을 찾아 흠모하였던 왕제 콘스탄틴처럼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샤를마뉴 왕은 800년 크리스마스에 로마 교황 레오3세로부터 황제 칭호를 받게 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추대되었다. 자신을 카이사르의 후예로 생각하였던 그는 학문과 예술의 열렬한 찬미자였으며 그의 제국이 영광스러운 옛 로마처럼 되길 원했기 때문에 서유럽이나 동쪽 비잔틴 지역의 당대 최고 지성인들과 공예가들을 수도 아헨 궁정으로 초청하였다. 샤를마뉴 황제로 인해 유럽은 비로소 암흑시대에서 벗어나 문화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미술은 지중해 문화와 켈트, 게르만 정신의 융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유럽적이라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예술이 여기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오토왕조의 예술
샤를마뉴 황제가 죽은 후 843년경 프랑스 왕국은 동프랑크와 서프랑크, 중프랑크로 나누었고 동프랑크와 서프랑크는 후에 독일과 프랑스로 발전했다.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세는 제국의 기반을 다지고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추대되었는데 오토 1세는 카롤링거 시대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했을 뿐 아니라 이를 더욱 발전시키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1051년경 독일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을 위해 제작된 청동 문에 조각된 부조를 일부분을 살펴보면 이 청동으로 만든 문의 부조는 한쪽에 8개씩 16개의 사각형 안에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인간창조와 타락, 그리스도 탄생과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꾸짖음과 변명하는 아담과 이브>의 부분도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꾸지람과 변명하는 배역이 확실한 극적 장면이기도 하다. 의미를 갖는 사물들만 강조하여 인물상들이 한층 더 뚜렸하게 부각되어 있고 하나님이 아담을 꾸짖자 아담은 이브를, 이브는 땅의 뱀을 가리키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원죄에 대한 주제가 너무나 명확하게 표현되어 우리는 인물들의 비례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고 아담과 이브의 육체가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오토 왕조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오토 왕조의 표현주의에서 오는 감동은 쾰른 성당의 걸작 <게로의 십자가>에서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