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소포타미아 역사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사람들은 바로 수메르인이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수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인류 최초로 문자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공통의 종교, 수학, 법률 그리고 건축법을 발달시켰다. 수메르인들은 왕이 죽으면 저승에서도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도록 모든 가족과 노예들은 물론 왕궁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함께 묻었기 때문에 부장품을 통해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메르 문명도 북방의 셈 어족 아 카드인에 의해 멸망되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여러 세기 동안 혼란의 역사가 흘렀다. 그 후 기원전 1700년경 바빌로니아를 창건한 함무라비는 바빌론을 수도로 정하고 법전을 만들어 최초로 성문화했으며, 이때에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역이 되었다. 그 사이 약 300년간 북방의 아시리아 지배 아래 있기도 했지만, 신바빌로니아라는 이름으로 기원전 55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에게 멸망하기까지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와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2. 위대한 건축가
신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자신의 수도 바빌론을 '세계의 중심'이라 불렀다. 공중 정원과 바벨탑이 있었던 이 고대 최고의 도시는 고대 세계를 대표하는 미술과 건축물의 요람이었다. 구양성서에서는 8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바벨탑을 하늘에 이르려는 인간의 오만함의 상징으로 묘사하였다. 한편,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바벨탑은 청동문이 있고 120마리의 사자가 새겨진 화려한 빛깔의 반짝이는 타일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모양의 8층 건축물이라고 묘사하였다. 외부는 나선형의 계단이 휘감고 있고 그 꼭대기의 내부에는 정교하게 장식된 의자와 황금 탁자가 놓여 있는 신전이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이 방에서 그들의 신이 머문다고 굳게 믿었다. 고대 7대 불가사의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인 공중 정원도 마찬가지로 대단한 것이다. 이것은 유프라테스 강 위에 솟아있는, 벽돌로 만들어진 4개의 연결된 테라스였는데, 그 위에는 온갖 화초와 관목이 우거져서 도시 위를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 속의 낙원인 에덴동산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고 믿기도 하였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석재가 아니라 햇볕에 말린 벽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소멸되어 주춧돌을 빼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는 여러 문명권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대부분 피라미드 모양 자체에 마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피라미드인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나 매끄러운 평면의 이집트 피라미드는 주위의 풍경을 압도하면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시각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마야 문명의 계단형 피라미드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정문에 있는 페이(I. M. Pei)의 유리 피라미드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 존재하는 피라미드의 형태의 또 다른 예이다. 건축술의 요람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피라미드가 20세기 건축가들에게도 여전히 상징적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우연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흙으로 빚어 햇볕에 말린 벽돌을 사용해 신전을 중심으로 한 정교한 도시를 만들었는데 이 건물들 내부에는 신전뿐만 아니라 상점, 일터 거주지가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방어 및 공공 사업 같은 공동의 작업과 노동의 분업을 통해 도시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니네베에 있던 아시리아의 왕 사르곤 2세의 선에는 넓이가 약 101제곱킬로미터에 달라고 200개가 넘는 방과 정원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왕의 방과 할렘, 휴게 시설, 병사들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성은 2,589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도시 가운데 15미터 높이로 쌓아 올린 인공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이 궁성보다 더 높은 것이 지구라트라는 사원인데, 이 거대한 벽돌탑은 각각 높이 5.5미터인 7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각 층마다 다른 색깔이 칠해져 있다. 기원전 3000년 이전의 이집트 최고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된 백색신전이라 일컬어지는 지구라트가 우르에 남아있다. 지구라트를 이와 같이 높게 만든 이유는 신은 우리보다 높은 곳에 거주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구라트는 기원전 600년경에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