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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에리즘과 후기 르네상스

by 퀸소담 2023. 6. 15.

1. 후기 르네상스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부터 1600년까지 르네상스 전성기 말기와 바로크 초기의 중간 시기를 마니에리즘 시기, 혹은 후기 르네상스 시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의 르네상스 미술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게 되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성인'으로 불렸고 그들의 그림 한 점을 얻고자 애걸복걸하는 왕들이 부지기수였다. 현실을 묘사하는 데 문제가 되었던 어려운 점들은 모두 해결되었으며, 예술은 완벽함과 조화를 달성하게 되었다. 그 이후의 미술가들이 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 대답은 조화와 이성, 현실성을 대신해서 부조화와 감성,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욕망에 후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이른바 마니에리스트들은 자연의 관찰에 기초를 둔 사실주의 양식을 저버렸다고 보인다. 또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과장하여 지나치게 귀족적인 우아함을 추구한 결과 균형적인 안정감 대신 불안정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시대도 매우 불안정하고 무질서했다고 평가된다.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이 안정된 시대에는 그림의 구성도 좌우대칭적이며 중심이 가운데를 향했으나, 후기 르네상스 시기에는 구성도 사선을 위주로 해 가운데 텅 빈 채 사람들이 그림의 구석으로 몰려있었다. 이것은 공통된 믿음을 읽어버린 채 혼란에 빠진 당시 현실이 회화 속에서 불균형과 산만함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마니에리즘'이라는 용어는 이탈리어 '디 마니에라'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의미는 미술작품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일정한 규범의 양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마니에리스트들의 그림은 양식이 서로 동일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인물들의 콘트라포스토 동작이 과장되어 몸 전체가 한껏 비틀려 있는데 육체를 묘사한 것도 왜곡되어 길게 늘어져 있거나 지나치게 근육이 많이 있다. 색채는 원색적이고 긴장감과 운동감의 느낌을 강조하고 있으며 빛의 묘사도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마니에리즘 작가로서, 명성을 날린 이는 폰토르모와 로소가 있었는데 브론치노는 긴 목과 늘어진 어깨를 가진 우아하고 섬세한 취향이 초상화로 유명하다.

2. 위기의 화가들

후기 르네상스 즉 마니에리즘 작가들은 의도족으로 자신의 작품속에서 기이한 분위기를 조장하였는데 어떤 화가들은 사생활까지도 매우 괴팍하였다. 로소는 비비 원숭이와 함께 살며 시테의 부패 과정에 매료되어 밤마다 묘지를 파헤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의 그림은 때때로는 매우 악마적이어서 성 안나를 마치 말라빠진 마녀 같이 묘사하기도 하였다. 폰토르모는 실제로 정신병자였는데 죽음의 공포에 빠져 우울증에 걸려 있었던 화가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자 직접 세운 높다란 집에서 혼자 살며 그의 다락방에 들어가려면 그가 위에서 사다리를 내려주어야만 가능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이와 같이 이상하게 민감한 감수성을 잘 표현하였다고 보인다. 원근법은 비이성적이고 연보라, 산호색, 암갈색, 독기를 품은 녹색과 같은 불안정한 색채를 즐겨 사용하였고 그림 속의 인문들은 화가의 편집광적인 불안을 반영이라도 한 듯 난폭하고 불안정해 보인다.

3. 스페인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기 스페인에서 가장활약이 두드러진 화가는 엘 그레코였는데 당시 베네치아의 속국이었던 크레타 섬 출신의 엘 크레코는 화가로서의 첫 수업을 평명적이고 도안적인 비잔틴 양식을 배우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베네치아에 온 그는 곧 티치아노의 생생한 색채와 틴토레토의 극적인 빛의 사용법, 그리고 로마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와 마니에리즘의 영향을 받아 그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였으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그리스인이라는 의미의 '엘 그레이코'로 더 유명하다. 그는 35세에 스페인에 건너가 화가로 활동하면서 반종교개혁과 종교재판의 광기에 휩싸였다. 엘 그레코의 초현실적이고 격양된 감정의 그림들은 이때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 것이라고 보인다. 한 번은 자신만만한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므로 자신에게 <최후의 만찬>을 다시 그릴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