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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미켈란제로

by 퀸소담 2023. 6. 15.

 

1. 신선한 사람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어린 시절에 석공을 남편으로 둔 유모 손에서 자랐는데 그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조각과 소묘 등 미술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조각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보다 존경받는 직업을 찾기를 바랐다.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가 소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열다섯 살 때 피렌체에 있는 궁전에 데리고 와서 수양아들로 삼았다. 미켈란젤로는 누구보다 예술가의 위상을 높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창조의 재능은 신으로 받은 것이라 믿고 모든 관습을 깨뜨리게 되었다. 숭배자들은 부여 방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켈란젤로는 모든 관습을 깨뜨렸다. 숭배자들은 그를 신성한 사람으로 숭배하였지만 실제로 그는 매우 고독하였다. 한 번은 그의 라이벌인 라파엘로가 귀족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것을 본 미켈란젤로가 "귀족 도련님처럼 참미자들에게 둘러싸여 어디를 가나?"라고 묻자 라파엘로가 "그럼 당신을 사형 집행인처럼 혼자서 어디를 그렇게 가시나요?"라고 응했던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는 일체 제자를 두지 않았으며, 자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었다. 어떠 사람은 미켈란젤로에게 결혼을 하지 않아서 후계자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였는데 "나에게는 끊임없이 나를 들볶아 대는 예술이라는 마누라가 있고 내가 남김 작품이 나의 자식들이오, "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매우 격정적이고 강직하여 거침없이 행동했으며, 채석장에 있을 때나 작업 중일 때에만 행복해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신랄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 어느 날 사람들이 어떤 화가의 그림 속 황소가 매우 잘 묘사되었다고 칭찬하자 "모든 화가들이 자신의 초상은 잘 그리는 법이지"라고 대꾸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미켈란젤로는 건축가, 화가, 조각가, 공학자로 활약할 정도로 매우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산 전체를 거대한 조각품으로 만드려고 계획을 세운적도 있다. 미켈란젤로는 약 90세까지 장수하였으며 죽기 직전에 조각품을 손질하고 있었는데 유언으로는 "죽기 전에 기본을 조금 알 것 같은데 죽어야 하다니..."라는 말을 남겼다.

2. 미켈란젤로 피에타

미켈란젤로는 모든 예술 가운데에 조각가가 신과 가장 가깝다고 믿었는데 그 이유는 신이 진흙에서 생명체를 창조하였듯이 조각가 역시 돌에서 미를 끌어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조각을 "대리석 안에 갇혀있는 인물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조각가들은 실수한 부분을 다른 대리석 조각으로 뜯어 맞추는 데 비해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한 덩어리로 조각을 완성하였다. "당신이 그 대리석 덩어리를 하나의 산에서 쪼아 냈을 때는 어떤 한 부분도 빠져서는 안 된다."라고 다른 조각가에게 충고를 하였다.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첫 번째 작품은 23세에 조각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의미의 <피에타>이다. 피라미드 구도는 레오나르도에게 배운 것이고 성모마리아의 평온한 얼굴은 그리스 조각의 사실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있으며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예수의 신체 구조는 시체의 해부를 통하여 얻은 것이라 하겠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선 보였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어린 나이의 조각가가 만든 작품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고 믿지도 못하였다. 이 말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성모마리아의 가슴에 두른 띠에 자신의 이름을 조각해 넣었는데 그가 작품에 사인한 유일한 것이다. 

3. 시스미나 성당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주문했을 때에는 밋밋한 천장에 푸른 바탕을 칠하고, 덩굴무늬로 장식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곳에 인유의 탄생과 죽음을 표현한 340여 개의 인물상을 그려 넣어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대작을 제자도 쓰지 않고 미켈란젤로 혼자서 4년 만에 완수했는데 이 작업에 대한 그의 집념과 열정을 증명하였다. 미식 축구장보다 1.5배나 큰 크기의 천장에 디자인하고 소묘를 하고 회반죽을 칠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육체적 노고만 하더라도 굉장한 것인데 천장에 비가 새서 애써 바른 회반죽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고, 십자형으로 분할된 원통형 궁륭의 둥근 모양이 미켈란젤로의 작업을 몇 배나 어렵게 만들었었다. 게다가 그는 사다리 위에서 몸을 구부린 채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작업하였다. 미켈란젤로는 회화를 조각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예술로 보아 경시했지만 이 천장화는 실제 세계가 아니라 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형상 미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누드라 일찍이 이토록 거대한 스케일로 표현된 적이 없었으며, 이들은 아무런 배경이나 장식품 없이 그려져 있다. 비틀린 인체의 누드는 마치 조각품처럼 얼굴보다 몸통이 더욱 표현적이며 마치 채색한 돌을 조각한 것 같은 양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