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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유산이 응용된 로마 미술의 특징

by 퀸소담 2023. 6. 10.

1. 로마 미술의 시작

로마는 기원전 8세기에 테베레 강변에 자리 잡은 몇 개의 작은 마을이 모인 소규모 시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에트루리아 문명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공화정치 형태를 확립하고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전성기의 로마제국은 영국에서부터 이집트, 스페인, 남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방대해진 로마 제국은 그리스와 같은 구시대 문화를 흡수해 그레코로만이라는 복합적 문화 형태를 북부 아프리카와 서부 유럽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 미술은 이후 모든 시대에 예술적인 발판을 제공하였는데 이 거대한 제국은 두 세기가 훨씬 넘도록 번성하여 강력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지만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지금의 이스탄물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영광스러운 로마 시대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그리스 식민지였던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섬에서 기원전 3세기경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로마인은 그리스문화에 압도당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적 취미에 열광해 갤리선으로 그리스의 청동 조각과 대리석상을 들여와 로마 광장에 진열하였다. 네로 황제는 델피 신전에서만 500여 개의 청동상을 가지고 왔고 더 이상 가져올 진품이 없게 되자 장인들을 시켜 복제품을 생산 하도록 하였다. 비록 로마인들이 정치로 군사력으로 그리스인들을 지배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리스인들의 우수한 예술과 문화에 굴복하게 되었다. 로마의 시인 호레스는 이런 현상을 "무례한 정복자가 오히려 그리스의 포로가 되어버렸다."라고 비꼬기도 하였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미술뿐만 아니라 시, 수사학, 철학 등에도 매료되어 많은 그리스 지식인들과 조각가, 화가를 비롯한 수많은 장인들을 고용하였다. 엄청 나게 많은 조각들이 기원전 27년에서 기원후 395년에 이르는 로마 제국 시기에 제작되었으며 대부분이 그리스 조각상을 모사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로마는 그리스보다 앞서 있던 군사력과 정치 효율성을 바탕으로 그리스 문화의 절대적 영향력에서 차차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과 철학을 키워나갔다. 또한 역사상 최대 제국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조직력과 능률적인 행정력이 보태졌다. 로마 예술은 고전기 그리스 예술에 비해 지적이거나 이상적인 면은 덜했지만 더욱 현실적이고 기능에 충실하였다. 그리스 인들이 혁신적인 면에서 탁월했다면, 로마인의 장기는 행정 능력에 있었는데 로마 군대가 지나간 곳 어디에서나 도로, 다리, 상하수도, 수로나 법률 같은 실질적이며 문화적 혜택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었다. 

2. 로마 건국의 신화 로물루스와 레무스

미의 여신 비너스와 트로이 왕의 형제인 안키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네아스는 트로이멸망을 결정한 신들의 명에 따라 트로이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아들 아스카니우스와 추종자들을 이끌고 신들이 약속한 라틴국의 공주 라비니아와 결혼하는데,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는 라틴 지역에 대도시 알바롱가를 건설했거 그 후예들이 이곳을 400년 동안 다스렸다. 알바롱가 최후의 군주 누미토르의 딸 레아실비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결혼해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낳았다. 형 누미토르를 누르고 권력을 빼앗은 횡폭한 군주 아물리우스는 쌍둥이를 테베레 강에 던져 죽이도록 했다. 그러나 아버지 마르스의 보호 아래 쌍둥이는 물살에 실려 안전하게 팔라티노 언덕에 닿았으며 이때 나타난 암늑대가 젖을 먹여 보호해 주었다. 쌍둥이 형제는 나중에 우연히 이들을 발견한 목동의 손에 키워지는데 성장한 뒤 자신들의 탄생 비빌을 알게 된 두 형제는 아물리우스를 중이고 할아버지 누미토르를 왕으로 복위시켰다. 누미토르는 이들 형제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해 기원전 753년 4월 21일 암늑대가 형제를 구한 팔라티노 언덕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로물루스는 새 도시의 이름을 로마라고 정하고 초대왕이 되어 로마건국의 시조가 되었다. 

3. 로마 미술의 특징

로마인들은 당시 유행하였던 헬레니즘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리스 조각들을 대량으로 복제하긴 하였으나, 점점 자신들의 특징적인 양식을 발전 시켰다. 일반적으로 로마 조각들은 좀 더 실제적이다. 로마인들은 집에서 밀랍으로 만든 조상의 데스마스크를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죽은 자들의 얼굴에 직접 주물을 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전통이 로마의 조각을 주였다. 이러한 전통에서 예외적으로 로마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 관청은 황제, 정치인, 장군들을 신과 같은 위용으로 묘사 흉상을 대향 복제해서 전시하였다. 재미있는 부분은 왕권교체의 주요 수단으로 암살이 사용되었던 로마 제국 쇠망기의 초상 조각은 다시 직설적이고 실제적인 표현 방식으로 돌아갔다. 전혀 미화되니 않은 카라칼라 조상은 잔인한 독재자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고 필리프스는 의심 많은 폭군으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