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콜로세움
아치와 궁륭에서 쌓은 공학적인 경험과 콘크리트를 쓰면서 쌓은 실제 경험으로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규모의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 기법들은 그리스 극장까지도 변형시켰는데 그리스 극장들은 언덕 사면에 축조되었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유롭게 서있는 건물이 아닌 응용한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콜로세움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원형 경기장일 것이다. 수백만에 이르는 로마 인구의 대부분은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기원후 809년에 문을 연 콜로세움은 관객 5만 명을 채우고 3,000명이 넘는 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는 규모의 무대를 경기장 전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단연 검투사들의 결투였다. 어떤 검투사는 방패와 투구, 창으로 무장한 반면, 어떤 이들은 그물과 삼지창만을 들었다. 검투 선수들은 가죽장갑을 끼고 경기를 했지만 그들의 주먹은 쇳덩이를 부스러뜨릴 정도로 단단하였다. 열정적인 결투 장면을 연출하다가 검투사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 노예들은 채찍을 휘둘러 달아나는 야수와 검투사들을 다시 싸움터에 몰아넣곤 하였다. 관객들이 살인적인 광란에 휩싸여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 하루에도 40명이 넘는 검투사가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하루 행사 동안 수천 구가 넘는 사람과 동물 시체가 쇠갈퀴로 끌려 나가기 일쑤였다. 막간극은 범죄자들의 처형이었는데 인간과 야수의 대결이었다. 지하 우리에서 수백 마리의 굶주린 사자 떼가 원시적인 승강기로 실려 나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그리스도교 신자와 노예들을 공격하였다. 관중들은 인간과 곰 혹은 코끼리나 코뿔소와의 대결도 좋아하였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승전을 축하하고자 1만 1,000마리의 사자, 표범, 타조, 영양을 한 번에 희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짐승들의 악취를 막기 위해 노예들이 귀한 손님에게 향수를 뿌려댔거 경기장의 모래 위에 붉은색 가루를 뿌려 핏자국을 가리기도 하였다. 콜로세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효율성이 극대화되게 설계되었으며 오늘날 스타디움 디자인에도 응용된다. 좌석은 수십 개의 통로 중 하나를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고 관객들은 입장할 때 좌석번호를 배당받기 때문에 유돌이 쉽다. 높이가 약 50미터인 건물은 그리스 건축에서 사용되었던 세 가지 양식을 전부 응용하고 있는데 1층은 도리아식을 변형했고, 2층은 이오니아식,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의 반원주로 이루어졌다. 수직의 원주와 수평의 아치를 조화롭게 통합시켜서 거대한 정문을 친숙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로마식 구조와 그리스 기둥 양식의 결합은 이후 건축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불행히도 훗날 로마의 부호 바베리니 가문에서 경기장의 대리석 외장재를 떼어 내어 자택을 장식하는 바람에 오늘날에는 콜로세움에서 대리석 장식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2. 숯덩이로 변한 도시 폼페이
문헌에 기록된 목격자 플리니우스의 증언에 따르면 기원후 79년 어느 여름, 오루 1시쯤 갑자기 베수비어스 화산이 폭발하였다고 한다. 용암이 분출하여 폼페이, 헤르쿨라네움과 인근 마을이 화산재에 뒤덮이고 말았다고 하였다. 다음 날 검은색 버섯구름이 언덕에서 약 193킬로미터나 솟아올라 인근 마을은 약 5,5미터 높이의 잿더미에 파묻히고 말았다. 이 마을들은 그대로 화산재에 파묻혀 1,800년 동안이나 잊혀있었기 때문에 모자이크, 벽화, 일상용품 등이 손상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폼페이는 인구 2만 5천의 사치스러운 휴양지였다. 1800년 중반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에서는 숯덩어리가 된 빵조각과 생선, 계란 등과 같은 일상용품뿐 아니라 주택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실적인 정물과 풍경을 담아낸 벽화도 발굴되었다. 주택 외부에 창문이 없고 개방되어 있는 공간은 중앙의 안 뜰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대 로마인들은 상상의 풍경을 담은 가짜 창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벽화는 단순히 채색된 대리석상을 그려 넣은 것부터 채색 기둥으로 둘러싸인 가짜 창을 통해 바라본 상상의 도시를 세밀하게 모사한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벽화 가는 그 이전의 미술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원근법과 음영법을 익숙하게 구사하고 있으며, 벽면은 생생한 붉은색과 황갈색,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채색된 돌조각, 유리 조각, 조개껍질 조각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가 마루와 벽,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대부분 회화 같이 정교해서 3~4센티미터의 눈동자 하나가 50여 개의 작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현관에는 개의 모습과 함께 'CAve canom(개 조심)'이라고 모자이크가 되어 있기도 하다.